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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지 '선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중국선교 열망 잇는다 - 외국인사역위원회 조한미 선교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울산남부교회   조회Hit 62   작성일2025-04-05

    본문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중국선교 열망 잇는다.

    외국인사역위원회 조한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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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남부교회 외국인사역위원회에서 중국인 성도들을 양육하고 있는 조한미(67) 선교사는 재한화교 2세다. 부모님은 모두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건너왔다.

    조 선교사는 2007년부터 울산남부교회에서 이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화교학교에서 마쳤다. 그리고는 홍콩에 있는 중화신학원에서 유학했다. 이때부터 선교의 꿈을 키웠다.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대학 약학과를 졸업하고 약사가 됐다. 한국의 약사 면허증은 물론 미국 플로리다주의 약사 면허증까지 취득했다. 그는 1986년부터 약국을 운영하며 울산에 정착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은 중국 칭따오(靑島)에서 가정교회를 섬기며 중국선교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울산남부교회에도 중국인들이 출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들을 섬기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조 선교사의 믿음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1955년 무렵부터 한성중화기독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상도동 숭실대학교 앞에서 중화요리점을 남편과 함께 경영하고 있던 어머니는 1960년부터는 가까운 영등포교회에 나가게 됐다. 이때 영등포교회에서는 중국선교사 출신의 방지일(1911~2014)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었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방 목사는 영등포 지역 화교 성도들을 위해 중국어 설교를 베풀었다. 영등포교회는 나중에 영등포중화기독교회를 개척해 분리 독립시켰다. 조 선교사도 이 교회에서 성장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1912년 총회를 결성하면서 중국선교를 결의했다 그리고 이듬해 선교사 3명을 중국산둥성(山東省)으로 파송했다. 중국이 한국 장로교회의 첫 해외 선교지가 된 것이다.

    방지일 목사는 193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중국 선교사로 파송됐다. 부친인 방효원 목사가 이미 중국에서 선교사 사역을 하고 있기도 했다.

    중일전쟁과 중국 공산화를 겪으며 한국 장로교의 중국 선교는 더 진행할 수가 없게 됐다. 방 목사는 1957년까지 중국에서 버티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에 의해 홍콩으로 강제추방을 당해야했다.

    그러나 방 목사의 선교사역은 귀국후 화교를 대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조한미 선교사의 가족들에게서 발아됐다. 조 선교사의 남동생 조영건 목사도 중국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중국선교 계획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뜻은 방지일 목사에 의해 재한 화교 성도들에게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울산남부교회 외국인사역위원회의 뿌리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중국선교 결의에 닿아 있는 것이다.


    글_강귀일 장립집사

    사진_부제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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